가야산은 산기슭에 숨은 듯 감춘 폐사된 보원사지를 허허로이 비우고 좌탈입망(左脫立亡)하듯 만산홍엽 떨구며 잘 익은 가을을 떠나보낼 채비와 제 몸에 품고 있던 물까지 꾸륵꾸륵 마저 다 토해 내고 있었네 옛 영화 아무 흔적도 없고 시작과 끝, 흥망과 성쇠가 너무도 분명한 절대 풍경에 석물(石物)만 상처이듯 유적으로 남아 한 물결이 만 물결을 따른다고 강당골 굽어 흐르며 산 그림자 낮추어 물 위를 건너는 햇살에게 육전(六錢) 소설 이야기 조(調)로 말씀 이르고 우뚝 선 암벽에 돋을새김 한 웅숭깊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께서도 폐사지, 그 향내 나는 상처 흐르는 물거울에 살짝 비추어 백제의 미소 푸르고 맑게 씻으시네
| 박만진 | 서산시 부춘동 출생. 1987년 『심상』 1월호 등단. 시집 『접목을 생각하며』, 『오이가 예쁘다』, 『붉은 삼각형』, 『바닷물고기 나라』, 『단풍잎 우표』 등 10권. 시선집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 『꿈꾸는 날개』 등 3권. 충남문학대상, 현대시창작대상, 충청남도문화상, 충남시인협회상본상 등 수상. 서산시인회 회장, 충남시인협회 회장,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, 한국시낭송가협회 자문위원, 윤곤강문학기념사업회 고문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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